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화(이병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46194
  • 전몰일자 : 19501128

공훈사항

이병화 일병은 1932년 10월 30일에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9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훈련소에 잔류하여 조교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한 이래로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병력 확보와 각 지역방위 임무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7월 초순, 각 도에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가 대구에서 창설되었고, 신병교육을 위해 7월 11일에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다. 이후 7월 17일에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고, 8월 1일에 육군중앙훈련소로 개칭되었다가, 8월 14일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육군 제1훈련소로 재창설되었다.
이병화 일병이 육군 제1훈련소에 배치되었던 10월 초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하여 38도선을 돌파하고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한편 제1훈련소는 창설 직후로서 신병교육과 적 게릴라 소탕작전에 여념이 없었다. 대구 지역은 1948년 11월 제6연대 반란사건이 일어나는 등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활동이 심했던 지역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한 후에는 미처 도주하지 못한 패잔병들이 대구 인근의 팔공산이나 보현산 등을 근거지로 하여 후방교란 활동을 계속했다. 대구에는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게릴라들의 좋은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육군 제1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도 동시에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해야 했다. 훈련소는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이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해 왔다. 그러던 중 11월 28일에 대구 인근에서 적 게릴라가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이병화 일병이 소속된 기동타격대는 즉각 출동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들의 기습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화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24-ㄹ-02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