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홍(李秉洪)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0992
  • 전몰일자 : 19500825

공훈사항

이병홍 일병은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말경에 제5사단 제3연대에 입대했다. 제3연대는 1950년 6월 15일부로 제7사단에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연대는 동일 11시부로 제7사단에 배속되어 포천 후방의 송우리 전선에 곧바로 투입되었다. 6월 25일 저녁 전력의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적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없는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적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그날 야간에 창동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는 27일 창동 선의 154고지 일대에 배치되어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수도 서울을 지키려 했으나, 적 전차를 막지 못해 또다시 돌파될 수밖에 없었다. 연대 장병들은 28일 한강교를 건너 과천으로 철수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29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 제2사단에 편성되어 역삼리, 과천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7월 2일 연대는 이 지역을 제3사단에 인계하고, 군포 근처의 348고지에 배치되어 아군 수도경비사령부와 제7사단의 철수를 엄호한 후 수원으로 철수했다. 7월 5일 육군본부는 부대를 재편하여 손실이 심한 제5, 제7사단을 해체했고, 이때 연대도 해체되었다.
이후 제7사단본부는 예하에 제3, 제9연대를 편성하고, 전북 일대에서 신병모집 임무를 수행하다 7월 20일 민부대(민기식 부대)로 개칭되었다. 7월 중순부터 북한군 제6사단이 호남지역으로 투입됨에 따라 제3연대는 민부대의 일부로서 임실-남원-운봉-함양-하동-진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펼쳤다. 8월 1일 미 제25사단이 민부대를 배속받아 마산 방면에 투입되었고, 민부대는 함안의 괘방산, 서북산 일대에 배치되어 11일까지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한편, 북한군 제12사단 1개 연대가 청송-기계-경주 축선으로 침투하여 11일 포항까지 점령하자, 당시 예비였던 민부대는 8월 15일 포항지구전투사에 배속되어 이 지역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날 민부대는 포항 시내에 있던 소수의 북한군을 격퇴하고 포항을 탈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8월 2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홍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7판-7면-0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8-ㅍ-07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