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호(李炳號)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4756
  • 전몰일자 : 19510216

공훈사항

이병호 일병은 경기도 김포군 대곳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호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하순, 제6사단은 낙동강 선에서 반격으로 전환하여 함창-충주-원주 방향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이후 10월 5일에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하였고 10월 말에는 압록강 변의 초산과 벽동까지 진격했다. 이때 동림산 일대에 매복 중이던 중공군이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자, 아군은 위협을 느끼며 청천강을 건너 개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11월 14일에 영원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유엔군은 11월 25일에 압록강을 향해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고, 이때도 대규모 중공군에 의한 기습공격으로 아군의 후방이 차단되면서 큰 피해를 받고 결국은 38도선 일대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은 12월 11일에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했고, 사단의 예비인 제2연대는 동두천에 집결해 있었다. 이곳에서 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대규모 공격에 대비해 방어진지 보강과 장애물 설치에 집중하고 있었다.
중공군은 예상대로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향해 총공세(일명 중공군의 3차 공세 또는 신정공세)를 개시했다. 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에게 최대한 타격을 가하며 방어진지를 사수하고자 했으나, 적들이 후방으로 침투하여 철수로를 차단하여 진지에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사단은 1951년 1월 1일 야간에 전방연대가 고립될 위기에 처하자 철수를 결정했다.
이병호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 장병들은 진지에서 철수하여 의정부 및 창동을 거쳐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했다. 이후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제6사단은 2월 1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저지했다. 그는 2월 16일 방어전투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9판-4면-07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3-ㄲ-03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