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호(李炳鎬)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227

공훈사항

이병호 경사는 경북 성주군 월항면에서 출생했다. (출생일자 및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태전사 사령부 소속으로 재직 중 안동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북한군이 남으로 진군하자 성주경찰은 지역 내 주요시설 경비, 성주-김천, 성주-구미를 잇는 주요 도로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의 남진이 계속되자 성주경찰은 남으로 후퇴하여 8월 초 고령군에 도달하였으며,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까지 이곳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기여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성주경찰은 9월 25일 성주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잔적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인천상륙작전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전선이 단절된 공산군과 북한 유격대는 태백산맥 일대로 잠입했다. 이들은 경북 지역, 강원 북부지역, 충북 동부지역에 걸쳐 있는 태백산을 근거지로 하여 군 주요 수송로인 경부선·중앙선·포항선 철도 차단과 대구·청주를 비롯한 시가지 공격 등 후방교란을 획책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1950년 12월 16일 태백산지구전투경찰사령부(이하 태전사)를 설치하여 공비들을 토벌하기 시작했다.
태전사는 주력부대인 제200부대와 제207부대, 경북 전투경찰대, 강원 남부와 충북 동부 지역의 경찰서 병력, 주요보급로 경비를 담당하던 서울 제106대대로 편성되었다. 이 경사는 1950년 12월 16일 태전사 경북 전투경찰대에 편성되어 공비토벌작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51년 2월 27일 이 경사는 안동군 길안면 묵계 일대에 출현한 공비들을 소탕하기 출동하였으며,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공비 5명을 사살하고 계속 작전을 수행하던 중 공비가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호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50판-1면-0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3-ㅋ-06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