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형(李炳滎)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3500413
  • 전몰일자 : 19500829

공훈사항

이병형 병장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 8월 25일 제7사단에 입대하여 병기중대에 배치되었다. 제7사단은 의정부 북방 포천 일대에서 47km 정면의 38도선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단은 6·25전쟁 발발 당시 동두천 축선에 제1연대를, 포천 축선에 제9연대를 배치하고 있었고, 병기중대는 의정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사단 정면에 주공인 제1군단의 주력을 투입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제203전차연대 1개 대대를, 포천 축선에 제3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을 투입했다. 사단은 북한군의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력 면에서는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 병장이 소속된 병기중대는 탄약 보급과 병기 보급 지원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초전에 적의 포격으로 전방 부대의 진지와 보급로가 파괴되고, 필요한 병기 물자 및 수송 차량과 인원도 부족하여 적시적인 탄약 및 병기 보급과 정비 지원이 여의치 않았다. 6월 26일 북한군이 의정부로 남진하자 병기중대는 창동선으로 철수했고, 창동선이 무너지자 사단사령부와 함께 28일 노량진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철수했다.
6월 29일부터 시흥지구전투사령부가 편성되었고, 혼성 제7사단은 노량진 방면의 한강선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사단 장병들은 이 지역에서 용감하게 싸우며 7월 2일까지 적의 도하를 저지했다. 그러나 7월 3일 새벽 북한군이 경부선 철교를 보수하여 전차를 도하시켰고, 이 전차들이 노량진-영등포로 진출함으로써 사단사령부와 수색중대는 안양으로 철수했다. 7월 5일 육군본부는 부대를 재편하여 손실이 심한 제5·7사단을 해체했다. 제7사단은 7월 20일 민부대로 개칭되었다. 7월 중순부터 북한군 제6사단이 호남지역으로 투입됨에 따라 민부대는 이리-전주-임실-남원-운봉-함양-하동-진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펼쳤다. 8월 1일 민부대는 미 제25사단에 배속되어 마산 방면에 투입되었고, 함안의 괘방산, 서북산과 진동리 일대에 배치되어 11일까지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민부대는 8월 12일 미 제25사단에서 배속 해제되었고, 15일부터 19일까지 포항전투에 투입되어 포항을 탈환했다. 이 병장은 이 공방전에서 탄약 보급 임무를 수행하며 동분서주하다가 적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8월 29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형 병장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8-ㅈ-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