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현(李炳玄)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90064
  • 전몰일자 : 19530519

공훈사항

이병현 이등중사는 1920년 1월 2일에 전라북도 익산군 함열면(現 익산시 함열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 협상이 지속되면서 고지 쟁탈전이 진행되던 1952년 1월 31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3사단 제23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현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제3사단은 1952년 1월 12일 美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구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전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사단은 큰 전투없이 주저항선과 전초진지에 대한 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정찰과 매복작전, 적진에 대한 전투정찰 등을 지속 실시했다. 그 후 사단은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중공군 제203사단이 9월 28일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공격을 가해왔고, 연대는 10월 2일까지 격전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중공군은 국군의 북한강 금성 돌출부에 대한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기 전 서전으로, 4월 2일 사단 주저항선인 949고지, 973고지의 전초가 설치된 689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이병현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중공군 제181사단의 공격을 맞아 4월 12일까지 8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
이후 4월 20일 국군 제5사단에게 전선을 인계한 사단은 美 제8군 예비로 전환되었다. 사단은 6월 15일 제2군단에 다시 배속되어 북한강과 금성천 분기점 상의 529고지(관망산)전투에 투입되기 전까지 화천군 사방거리 일대에서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했다.
이병현 이등중사는 689고지 전투 후 5월 초순경 사방거리 집결지에서 소대원을 통제하며 돌격요령에 대한 교육훈련 중 적 포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서울특별시 삼청동에 위치한 제36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이 병원에서 정성스럽게 치료를 받았으나 5월 19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현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8-ㅁ-064)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