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혁(李秉赫)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8101560
  • 전몰일자 : 19500714

공훈사항

이병혁 이병은 경상북도 영천군 화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1949년 8월경 제3사단 제23연대에 입대했다. 제23연대는 남파된 유격대 토벌부대로 투입되었고, 이 이병은 1950년 3월 27일까지 향로봉, 밀양, 양산, 언양, 울산 일대의 공비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배합전술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사단은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제22연대와 제23연대의 대전차포중대 및 2개의 중화기중대를 서울로 출동시키고, 제23연대만을 가지고 전투에 대비하게 되었다. 6월 27일 북한군이 강릉을 점령하고 제8사단이 제천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자, 동해안 축선은 제3사단의 전투정면이 되었다. 제3사단은 6월 29일 포항-영덕-평해를 거쳐 울진 남쪽의 왕피천에 도착했다.
연대는 7월 1일 새벽에 울진 시가지를 공격, 경미한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이를 탈환한 후 동해 가도 상의 138고지와 남대천 및 왕피천 일대에 부대를 종으로 배치하여 방어태세로 전환했다. 이 지역에 투입된 북한군 제766부대는 주력을 동해 가도로 기동시키고, 일부 병력을 산간지역으로 우회시켜 제23연대를 협공했다. 1일 아침 적은 강력하게 화력을 집중하면서 장갑차를 앞세우고 제23연대 진지에 공격을 가해왔다. 이때 사단과 연대에는 보병을 지원할 수 있는 화기라곤 1개 중화기 중대의 81mm 박격포 8문과 각 중대의 60mm 박격포 2문밖에 없었고, 장병들은 비정규전 경험밖에는 없었다. 이처럼 극히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이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138고지에서 왕피천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분전하였으나, 압도적으로 우세한 북한군의 공격에 밀려 7월 2일 영해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영해로 철수한 연대는 7월 3일부터 10일까지 등운산, 대둔산, 주왕산 일대의 적 유격대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7월 13일 영해 북방의 고지군을 점령한 연대는 북한군 제5사단의 공격에 맞서 분전했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7월 16일 고래산ᐨ102고지ᐨ167고지 선으로 후퇴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지를 끝까지 지키다 7월 14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혁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3-ㅎ-02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