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하(이병하)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104908
  • 전몰일자 : 19500805

공훈사항

이병하 하사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음에도 정치 및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9년 10월 18일,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19연대는 1950년 4월 19일에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이때 그는 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전속되었다.
이병하 하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인제-홍천 축선을 담당하고 있던 제2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제2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홍천 북방의 방어진지에 투입되어 인제에서 홍천에 이르는 축선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했다. 공병중대는 전쟁 발발 전에는 유개호 및 장애물 설치를 지원하였고, 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계획된 교량을 폭파하여 장애물로 만드는 등 제2연대의 전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제2연대는 적을 맞아 용감히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6월 27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지연전을 실시하며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7월 5일에 남한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방어전투를 실시하여 적 진출을 지연했다. 이후 7월 12일에 이화령 일대를 점령하고 충주-문경-함창 방면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제1사단과 이를 증원하고 있던 북한군 제13사단을 저지·지연하는데 중점을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제2연대는 7월 16일에 문경 방어를 포기하고 문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 축선을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후 문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중심으로 조봉, 어룡산 등지에서 치열한 전투를 했다. 북한군은 7월 25일에 제6사단 방어지역의 중앙을 돌파하고자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제2연대는 반격으로 조봉을 탈환하고 적 전차를 파괴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계속 증강된 북한군의 공격으로 피해가 증가하자 함창으로 철수했다.
제6사단은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즉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한 것이다. 이곳에서 이병하 하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8월 5일까지 방어지역 전방에 장애물 설치 작업을 실시했다. 그는 8월 5일에 방어지역 전방에 장애물 설치를 하던 중 적 침투부대의 공격을 받고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76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5-ㅂ-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