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하(李炳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0735
  • 전몰일자 : 19501207

공훈사항

이병하 일병은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하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하 일병은 낙동강전선에 투입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경주 북방에 있는 낙산(호명리)으로 철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후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10월 1~9일 사이에 양양-간성-양구-화천-회양-신고산-안변을 거치면서 북한군을 소탕해 원산을 점령하였다. 그들은 10월 10일 시가 중심부 서측방에 우뚝 솟아 있는 여왕산을 최초의 공격목표로 부여받았다. 그러나 공격작전의 진행 과정에서 원산 시내에서의 전투지경선이 불투명하여 원산시가에서 두 번씩이나 다른 사단과 서로 교차 진출하게 되거나 전투지경선을 침범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한 가운데 산속의 과수원 일대에 잠복하고 있던 북한군의 전차포 3문과 직사포의 포격으로 진출이 저지되었다. 이후 11월 백암-청진 선으로 진출하였으며 11월 말에는 길주에서 북한군을 소탕하는 수훈을 세웠다.
원산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를 시작하게 되자 함경도 지방의 많은 주민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남한까지 먼 거리와 영하 30도의 강추위는 이들 피난민들에게는 거의 절망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어떤 적절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38도선에 이르기 전에 공산군의 진격이 피난민의 대열을 앞지를 것이 자명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2월 7일을 전후하여 성진, 함흥, 흥남, 원산 등의 항구에는 피난민들로 큰 혼잡을 빚었다. 이병하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수송 수단이 허용하는 대로 가능한 많은 피난민을 후송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하였다.
그는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하였다. 이병하 일병은 1950년 12월 7일 흥남 철수작전에 참가하여 부여된 작전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며 용감히 싸웠으나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6판-4면-13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ㅎ-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