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하(李秉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9885
  • 전몰일자 : 19501001

공훈사항

이병하 일병은 경기도 인천시 신흥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7월 초순경 입대하여 수도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수도사단에 배치되었을 때의 전황은 북한군의 계속되는 공세에 밀려 국군은 남으로 지연전을 펼치고 있었고, 수도사단은 청주 일대에서 지연전을 하던 상황이었다.
7월 5일 18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연대는 진천-청주 북방의 미호천-남일면 성무봉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8월 3일부터 연대는 낙동강방어선에 투입되어 길안-청송 방어선과 의성 북방의 장림리 전투에서 적 제12사단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했다. 8월 5일 북한군 제12사단이 국군이 배치되어 있지 않은 산악지대를 통과해 8월 10일에는 영일군 기계까지 침투함으로써 제1군단의 방어선에 큰 돌파구가 형성되었다. 이에 연대는 8월 14일 기계 지역에 투입되어 18일 기계를 탈환하고 적을 비학산 방향으로 패퇴시켰다.
그러나 북한군 12사단은 9월 2일 경주를 목표로 일제히 공격(9월 공세)을 개시했다. 기계 서측방의 인비동-봉계동의 고지군에 배치된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백병전까지 치르는 혈전을 하면서 적을 저지했다. 이후 연대는 7일 안강 남쪽의 홍계동 고지를 점령하고, 치열한 교전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기계-안강-경주 축선의 돌파 위기를 해소하고 반격의 여건을 만들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반격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18일에 안강을, 21일에는 기계를 각각 탈환했다. 국군은 공격한계점에 이른 적이 퇴각하자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23일 적을 추격하여 청송(25일)-춘양(27일)-영월(28일)-평창(29일)-38도선 직후방의 서림리(30일)까지 적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고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이 추격전에서 이 일병은 험한 지형 속에서도 앞장서서 용감하게 진격하다 10월 1일 서림리에서 적 패잔병의 기습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하 일병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3면-04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5-ㄹ-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