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태(이병태)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108928
  • 전몰일자 : 19530615

공훈사항

이병태 이등상사는 1931년 12월 24일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1월 3일 제1연대에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예하부대로 배치되었다.
제1연대는 1946년 1월 15일 경기 양주에서 창설되어, 1949년 5월 12일 수도사단에 예속되었다. 수도사단은 동년 6월 10일부로 제7사단으로 개칭되어 동두천 축선의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한 이후 미약한 병력과 장비로 전투력 손실이 심해 7월 5일 해체되어 제1연대는 제8・1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로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제1연대는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3일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강릉에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이후 이 이등상사와 장병들은 3월 9일 속사리 일대 적 지역을 위력 수색해 북한군을 멀리 구축하였고 3월 26일 제2차로 38도선을 돌파한 후 계속 진격하여 4월 15일에는 캔자스 선의 동단 남가리로 진출하였다.
이병태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연대는 고지탈환 임무를 부여받고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였다. 1952년 10월 6일부터 4일간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이 이등상사와 연대장병들이 사력을 다해 방어함으로써 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 연대는 25일 주저항선을 제8사단에게 인계하고 경기도 양주로 이동해 미 제8군 예비로 전환되었다.
이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또한, 5월 23~24 금성 서남쪽 4㎞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 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는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태 이등상사는 1953년 6월 15일 김화지구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태 이등상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5708 육)을 추서하고 위패(23판-3면-33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7-ㄹ-02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