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태(李秉泰)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97143
  • 전몰일자 : 19530612

공훈사항

이병태 이등중사는 1929년 6월 15일에 충청북도 청주시(現 청주시 상당구) 서문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3월 14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모슬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태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은 국군과 유엔군이 총반격을 개시하여 서울을 재탈환하려 했다. 제5사단은 강원도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그 후 美 제10군단의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 시 사단은 1951년 8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가칠봉 부근 전투를 완수했다. 이어서 사단은 10월 20일 現 진지를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직할로 전환되어, 양양에서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며 인근 지역의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사단은 1952년 1월 13일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아군은 적에게 동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제5사단은 4월 15일부로 제2군단에 배속되어, 강원도 철원군 김화지역의 제3사단 전선을 인수받아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병태 이등중사의 제27연대는 우측 전방 883고지 일대에 투입되어 주진지 및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마침내 중공군은 6월 10일 제60군 제180・181・203사단을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펼치며 파상적인을 공격 가해 왔다. 사단은 제3사단 제22연대를 배속 받아 6월 15일까지 혈전을 거듭했으나, 적에게 주저항선을 빼앗기고 북한강 동·서안의 등대리-후동-널우골을 잇는 선까지 후퇴하여 新방어진지를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병태 이등중사는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중공군의 6월 공세 시 소대원을 지휘하면서 883고지 일대 방어진지를 사수하다가 6월 12일에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태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3154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5-ㄴ-09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