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태(李秉泰)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93403
  • 전몰일자 : 19520713

공훈사항

이병태 이등중사는 1932년 10월 26일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2월 9일 제주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태 이등중사는 1952년 3월 17일 화천으로 이동해 금성천 북안의 미주리 선에 배치되었다. 이후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2년 4월 5일부로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동부전선을 방어하였다. 4월 20일 진지 전방으로 정찰활동을 수행하던 그는 북한군과의 교전에서 중공군을 여러 명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6월 16일 전투지경선 조정에 따라 교암산 동측 765고지-690고지-663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690고지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1Km의 능선), 수도고지(663고지 북 500m, 610고지)등에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이때 사단은 여호고개-여문리를 경계로 좌전방에 1연대, 우전방에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하여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병태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7월 8일 새벽 1시에 621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날은 가랑비로 인해 기도비닉 유지에 유리한 반면 적정판단의 어려움이 있었다. 북한군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면서 일시 고지 정상을 장악하였으나, 고지 서북쪽의 적으로부터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수차례 반복하였으며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오직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 임무를 수행했던 이병태 이등중사는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으나 북한군의 포화에 의한 극심한 피해와 병력의 열세로 수도고지를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이 이등중사는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1952년 7월 13일 수도고지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태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7567 육)을 추서하고 위패(26판-4면-00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6-ㅍ-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