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태(李炳泰)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03

공훈사항

이병태 경사는 1919년 2월 10일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기도경 양평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양평에서 전사했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북한 유격대가 태백산 일대에 계속 침입하자 치안국은 시흥 육군보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경찰 간부들을 중심으로 4월 20일 제8·제9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영월과 춘천지역에 배치하는 등 전·후방의 치안확보에 노력을 기울였다.
6월 10일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38도선 접경지역인 경기·강원 2개 도에 비상경비태세 강화명령을 내려 북한의 군사동태를 잘 살피도록 하였다.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양평경찰서는 지역 내 보급로 경비, 주요시설 경비, 철도경비, 피난민 통제, 오열 색출, 치안유지를 하면서 북한군의 남진에 대비하여 작전태세를 강화하였다.
양평경찰은 봉미산과 갈기산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고자 했다. 6월 25일 북한군은 양평 방면에 1개 연대를 투입하였으며, 양평을 관통하여 서울로 진격하고자 했다. 양평경찰은 적의 진격을 저지하고자 했으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인하여 더 이상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6월 26일 양평의 삼각산으로 후퇴했다.
북한군의 일부는 서울 방면으로 진격하고, 일부는 여주로 우회하여 서울로 기동하고자 했다. 적은 1개 대대병력으로 양평경찰서 정면과 좌우측에서 포위공격으로 압박해 왔다. 적이 양평경찰서와 방어진지로 밀려들자 양평경찰은 삼각산 고지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했다. 그러나 적이 후속 증원병력과 합세하여 재차 경찰에 대한 공격을 가하자 양평경찰은 북내면으로 후퇴하여 전열을 재정비했다. 적은 3개 중대를 선봉으로 하여 남진을 계속했으며, 양평경찰은 북내면에서 더 이상 방어를 할 수 없어 7월 3일 여주 방면으로 철수하기로 했다. 이날 여주 방면으로 철수하던 양평경찰은 적 부대와 조우하여 교전이 벌어졌는데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태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50판-5면-20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ㅂ-07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