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춘(이병춘)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4444
  • 전몰일자 : 19500629

공훈사항

이병춘 중위는 경상북도 경주군 경주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호국간성이 되고자 1948년 12월 7일에 육군사관학교 제8기로 입교했다. 이 중위는 6개월간 교육훈련을 받고 1949년 5월 23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중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북한은 남한 사회의 혼란을 일으키고 장차 제2전선을 형성할 목적으로 유격대를 남파하고 있었다. 유격대는 1948년 11월부터 1950년 3월까지 10차에 걸쳐 남파되었으며, 그중 일부가 경북 일대까지 침투하여 일월산, 보현산 등지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습격, 파괴활동을 일삼았다. 제22연대는 토벌부대로 투입되었고, 이 중위는 1950년 3월까지 이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2연대는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6월 25일 오후 제23연대의 대전차포중대 및 2개의 중화기중대를 대동하고 대구에서 이동하여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27일 이 중위가 소속된 연대(-)는 봉일천 지구의 제1사단을 증원하고, 제3대대는 김포로 출동하여 김포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었다.
연대(-)는 11시 30분경 고양군 신도면 일대의 고지군에 배치되었다. 그날 밤 연대 정면까지 도달한 북한군 제1사단은 밤 11시경 연대진지를 야습했고, 연대 장병들은 28일 아침 5시경까지 치열한 교전을 벌이면서 진지를 지켜냈다. 그런데 28일 새벽에 적이 이미 서울에 진입함으로써 연대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는 29일 새벽에 행주에 도착하여 제18연대의 한강 도하를 엄호한 후, 도하를 개시하여 김포로 철수했다. 철수 도중 개화산에 배치된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곧 이들을 격퇴한 후 양화-영등포를 경유하여 시흥으로 이동했다. 이 전투에서 이 중위는 소대원을 이끌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6월 29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춘 중위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6404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12-ㅊ-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