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춘(李秉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6906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이병춘 일병은 경상남도 울산군 삼남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27일 육군에 입대하였다.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이병춘 일병은 카투사(KATUSA, 한국에 파병된 미군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한국군) 요원으로 선발되어 제2군단에 배치되었다.
제2군단은 1950년 7월 15일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에서 창설되었으며, 예하에 제1사단과 제6사단, 제8사단을 배속하였고, 초대 군단장은 김백일 준장이었으며, 7월 20일 유재흥 준장이 2대 군단장으로 부임하였다.
군단은 창설 직후 충주 방면으로부터 문경군 유곡지역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예하 제6사단으로, 풍기 방면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2개 사단에 대해서는 예하 제8사단으로 하여금 지연작전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이병춘 일병이 소속된 제2군단은 중부전선에서 38도선 돌파 및 진격작전을 담당하였다. 제2군단은 10월 5일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20호에 따라 제6사단이 화천-회양-지경리(원산 외곽)로, 제8사단은 철원-평강-용지원리(신고산 북쪽)로, 제7사단은 제6사단과 협조하여 김화를 점령한 후 예비로 후속하도록 하였다. 제일 먼저 진격을 개시한 우측의 제6사단은 10월 6일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한 다음 그 일대에서 저항하던 북한군 제9사단 예하 2개 연대를 격파하고 10월 8일 오후 늦게 화천을 점령하였으며 북진을 계속하여 10일에는 김화를 점령하였다.
이와같이 38도선을 돌파한 국군 제2군단이 예상보다도 순조로운 진격을 계속하자 육군본부는 10월 8일 오전 11시에 제2군단을 원산으로 이동시켜 그곳에서 제1군단과 교대한 후 원산을 경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950년 10월 25일 중공군의 제1차 공세에 밀려 철수하던 이 일병이 소속된 군단은 연이은 중공군의 제2차 공세로 11월 하순 예하 제7사단과 제8사단이 덕천-맹산 일대에서 큰 타격을 입고 철수하였다. 이병춘 일병은 군단 사령부 및 예하 사단들이 북한지역에서 철수작전 중에 있던 1950년 12월 1일 후방교란 활동을 벌이던 북한군과 교전 중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77-ㅅ-08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