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초(李炳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300863
  • 전몰일자 : 19500915

공훈사항

이병초 일병은 경기도 수원시 장안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6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병초 일병은 음성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사단 병력은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 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 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 제15사단은 9일 다시 무극리-음성, 신양리-음성 양측방 도로 접근로와 중앙 산간 접근로의 3개 방향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새벽 무렵 북한군은 음성에 포격을 집중하면서 2개 연대병력을 각각 8대의 장갑차의 지원하에 연대 정면으로 공격하였으나 이 일병과 연대병력의 집중적인 저지 사격과 역습에 의해 다시 저지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무렵 북한군이 공격을 재개하여 돌파를 기도함으로써 연대는 점차 위험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후 연대는 10일 낮부터 철수를 단행하여 괴산 북쪽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점령하게 되었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8월 초부터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큰 수훈을 세웠다. 이후 9월 4일 북한군 제3사단이 왜관-다부동 도로 남쪽 464고지로 침투하고 있었으며, 좌측방 왜관도 무인지경이 되고 우측방 에서는 북한군 제13사단이 다부동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가산으로 진출하려던 이 일병과 사단 병력은 다음날 5일까지 북한군 제1사단 1개 대대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철수하고 말았다.
이 일병과 사단 병력은 다부동 일대의 정해진 목표를 향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고, 연일 반복되는 공방전에서 매일 평균 600여명의 손실이 발생하여 병력이 날로 감소하였다. 이 일병과 사단 병력은 가산을 탈환하고자 9월 중순까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거듭하면서 방어선을 지켜냈다. 이병초 일병은 1950년 9월 15일 적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초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1-ㅅ-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