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철(李炳哲)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10500
  • 전몰일자 : 19510406

공훈사항

이병철 중위는 1930년 10월 9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중위는 사병으로 복무하다 장교를 지망했고, 1951년 2월 15일 육군 소위로 현지 임관하여 제7사단 병참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중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유엔군이 37도선 일대에서 적과 공방전 중이었고, 제7사단은 강원도 영월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사단은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맞아 1951년 2월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영월을 지켜냈다.
중공군의 제4차 공세를 격퇴한 유엔군은 중동부 전선의 공산군 주력을 격멸하고, 아리조나선(양평~횡성~평창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미 제9군단과 미 제10군단을 주축으로 킬러작전(Operation Killer: 2. 21.~3. 7.)을 전개했다. 이때 제3군단은 미 제10군단의 우측에서 조공으로 공격을 실시했고, 사단도 2월 21일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 3월 6일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은 킬러작전의 연장으로 리퍼작전(Operation Ripper: 3. 7.~3. 31.)을 시행했다. 이 작전은 미 제9군단을 주공으로 하여 아이다호선(서울 동쪽의 덕소~가평~춘천 북방~한계리를 잇는 선)을 확보하여 전선을 양단하고, 수도권 지역을 압박하기 위해 실시한 공격작전이었다. 이때 사단이 소속된 제3군단은 조공으로 공격했고, 사단은 3월 6일 하진부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평창군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사단도 공격을 전개하여 4월 중순경에는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하는 데 성공했다. 이 중위는 병기 소대장으로서 적시적인 병기 보급과 수리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 진격전에서도 이 중위는 제3연대의 병기 정비를 위해 앞장서서 이동하다 적의 습격을 받아 4월 6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철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2판-2면-94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ㅈ-02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