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철(李秉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43201
  • 전몰일자 : 19511009

공훈사항

이병철 일병은 1933년 5월 24일에 경기도 인천시 주안동(現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1년 1월 하순경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철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1년 3월 3일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태기산 전투(3월), 인제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여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선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으나, 적의 4월 공세에 밀려 다시 소양강 남단으로 철수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중공군 5월 공세 때 중공군 3개 사단의 집중 포위공격 속에서도 홍천 일대 풍암리까지 조직적으로 격전과 철수를 반복하며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그 후 사단은 5월 29일부로 美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공격부대로 선정되면서 소양강 동쪽에 배치되었다. 이어서 사단은 원통 북방 서화리 일대의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연하는 新캔자스선을 향해 공격작전을 펼쳐, 7월 말까지 新캔자스선 상의 진지강화와 재편성을 실시하면서 적과 대치 중에 있었다. 이때 제5사단은 다시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었다.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은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북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美 제10군단에 재배속된 제5사단은 9월 4일 이병철 일병이 소속된 제27연대를 주력으로 사단목표인 가칠봉 동북쪽 능선과 서희령(西希嶺)을 점령했다. 다음날부터 9월 22일까지 전 작전지역을 감제 가능한 1,211고지를 목표로 제27, 35연대가 교대로 공격을 펼쳤으나 실패하자 사단 예비인 제36연대를 투입하기 위하여 부대 재배치를 단행하였다.
10월 1일에 제36연대가 1,211고지를 탈취하였으나 적의 강력한 역습으로 1,211고지의 아군 방어진이 포위되자 사단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제27연대가 10월 8일 제35연대 제2대대의 엄호하에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다음날 적의 역습으로 또다시 철수했다. 이병철 일병은 분대원과 함께 10월 9일 1,211고지에서 철수 중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철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6판-7면-0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ㅂ-01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