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철(李炳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703638
  • 전몰일자 : 19501127

공훈사항

이병철 일병은 1925년 3월 4일 충청북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힘겹게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을 때인 1950년 8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철 일병은 다부동-군위 일대에 투입되어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3사단 일부 병력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하고 북한군 제15사단이 국군 제1사단보다 한발 앞서 유학산에 진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은 도로를 따라 신주막으로 진출 중인 연대 정면으로 접근하면서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병철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9월 28일 서울 수복작전에 기여하고 9월 말 38도선에 도달하였다. 이어 10월 9일에는 38도선을 돌파해 19일 평양에 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중공군의 기습공세가 시작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10월 23~24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 한 후 25일 운산에 도착하였다. 연대는 25일 오전 10시 30분에 운산에서 수풍호로 진출할 목적으로 군단에서 배속된 전차를 앞세우고 2개 연대 병진 대형으로 공세를 개시하였다.
청천강 남쪽의 신안주 부근에서 재정비를 완료한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11월 24일 북한군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은 연대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하여 교량을 파괴시켰고, 또 도로상에는 도처에 120mm 박격포탄으로 만든 부비트랩을 매설하였다. 사단 공병이 이를 제거하는데 다소 시간이 지연되었으나 북한군의 저항이 경미하여 저녁 무렵에는 태천을 남쪽과 동쪽에서 포위하게 되었다.
그는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굳은 의지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철 일병은 1950년 11월 27일 태천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2-ㅍ-06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