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철(李炳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96330
  • 전몰일자 : 19510422

공훈사항

이병철 일병은 1926년 1월 1일 경기도 용인군 남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중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군단에 배치되었다.
이병철 일병이 배치된 군단은 9월 하순부터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기계-강릉을 도착할 거쳐 10월 1일 예하 제3사단을 선봉으로 38도선을 최초로 돌파하고 미 제10군단이 도착할 때까지 원산항을 확보하기 위하여 안변, 용포리, 용탄리 및 용탄강 입구를 주저항선으로 하고 영흥을 확보함으로써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문천, 영흥, 정평, 함흥 및 파춘장, 흥남 축선을 따라 진격하여 북한군을 섬멸했다. 11월 27일에는 수도사단이 청진을, 11월 30일에는 제3사단이 압록강 연안의 혜산진을 점령했다.
중동부전선의 험준한 산악지역을 방어한 군단은 1951년 1월 1일 홍천-원포리 방향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후 7일에는 홍천에서 영월로 이동 중 적과 조우하여 격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병철 일병과 장병들은 군단의 방어선인 두평-후천-정선-송계리 전방에서 적의 공격이 감소하자 군단 후방지역의 위협을 제거하고 후속부대의 증원을 차단할 목적으로 18일 남대리 부근으로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에 북한군은 산속으로 잠적한 후 야음을 이용하여 기습공격으로 저항하였으나 포병화력과 항공지원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분산되어 산중으로 도주하였다. 그 후 이 일병과 군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철수하여 횡성 전투에서 공방전을 전개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후 제1군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를 맞았으나 다른 전선과는 대조적으로 군단 정면에서는 접적이 경미하여 공세작전으로 전환하는데 용이하였다. 이 무렵 북한군 제6사단은 가리봉-대승령-노동을 연하는 선에 단애와 협곡 그리고 울창한 삼림을 이용하여 강력한 거점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사기로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철 일병은 1951년 4월 22일 대승령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5판-5면-03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77-ㅎ-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