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철(李秉哲)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6551
  • 전몰일자 : 19510305

공훈사항

이병철 일병은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10월경 입대 후 제주도에 있는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할 무렵, 제8사단은 국군 총반격 작전에 합류하여 10월 3일 서울에 도달하고, 10월 9일 연천 남방에 도달했다. 이후 1950년 10월 24일 서북방의 239고지에 잠복하여 저항을 기도하는 적 약 1개 대대의 병력을 포위하고 패잔병을 완전히 소탕했으며, 도주하는 적을 격멸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제8사단은 1950년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구장으로 진출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구장동 일대에 배치되어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중공군의 제1차 공세가 끝나고 아군과 적군은 부대 재정비에 들어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에 아군은 중공군이 조직적인 공격을 하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한다는 계획에 따라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계획하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병력과 장비가 열세한 와중에 경기도 연천 부근의 요충지인 520고지를 향해 돌진하여 점령하였다. 하지만 이내 곧 매복해 있던 적군에 포위당했으나 기지를 발휘하여 포위를 뚫고 철수하는데 성공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강원도 화천군 내평리에서 적군을 대적했으나 사단의 정면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이 진격해왔다. 장병들은 진지 구축도 불가능한 혹한에서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며 적에 대한 지연전을 실시했다.
아군은 전력을 가다듬어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지만 홍천군 삼마치 고개 및 오음산 고지를 선점한 중공군 제198사단의 저항에 봉착했다. 이후 국군은 5일간 제병협동작전을 실시하였으나 전선돌파에 실패했고, 1951년 2월 12일 적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제8사단은 아군의 증원을 기다리며 방어했지만 아군 전선에 대대적인 포격이 가해져 모든 연대가 포위상태에 들어가 제8사단은 주포리로 지휘소를 옮기며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1년 3월 5일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철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9판-5면-01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1-ㅂ-08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