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철(이병철)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0310
  • 전몰일자 : 19501010

공훈사항

이병철 일병은 1932년 5월 10일 서울시 성동구 신당동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초순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공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형산강 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일병과 공병대원들은 진지 전방에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도하를 지연시켰다. 이곳에서 사단은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해·공군의 폭격 지원하에 치열한 전투 끝에 적 제5사단을 물리치고 9월 22일 흥해까지 진격했다.
국군은 22일부터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일일 평균 17.3km의 경이적인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 강릉(30일)을 차례로 탈환하고,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 일병과 사단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2일 양양을 점령하고, 거진을 거쳐 5일 장전에서 적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으나, 이를 제압하고 계속 북진하여 8일 통천을 점령했다. 그리고 10월 10일에는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한 후, 지대 내의 잔적을 소탕했다. 이 일병은 비록 신병이었지만 방어 때는 가장 늦게까지 장애물을 설치했고, 공격 때는 가장 앞장서서 적의 장애물을 제거했다. 그는 10월 10일 원산 시내 장애물을 제거하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7판-4면-18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5-ㅍ-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