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천(李炳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6852
  • 전몰일자 : 19501228

공훈사항

이병천 일병은 1930년 5월 25일에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북진작전을 실시하던 1950년 9월 초순에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0월 16일에 제2사단 창설 요원으로 선발되어 제3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천 일병이 부대로 전입해 왔을 때, 제2사단은 11월 7일에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때 제17연대를 예속시키고, 당시 11월 11일과 13일에 신편 된 제31연대와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사단은 재창설 직후 서울에서 포천-평강 지구로 이동하여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들은 북한군 제10사단 소속이 주축이 되어 대대 및 중대 단위 규모로 활동하고, 심지어 연대 단위 지휘체계를 갖추고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10월 하순부터 중공군 침공에 호응하여 유엔군의 병참선을 차단하는 등 교란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국군과 유엔군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이병천 일병이 소속된 제32연대는 의정부 부근에 연대지휘소를 설치하고 북한군 패잔병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한편 유엔군의 주력은 10월 말에 압록강까지 진출했으나,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청천강 일대로 철수하여 2차 총공세작전을 준비 중에 있었다. 유엔군은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를 실시하여 국경선을 향해 진격했으나, 이번에도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되는 등 큰 타격을 입고 38도선으로 철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제2사단은 유엔군의 철수로 확보를 위해 후방에서 교란 활동을 하던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했었고, 12월 8일에는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적들은 12월 28일에 아군의 방어준비를 방해할 목적으로 공격했고, 이병천 일병이 소속된 중대는 이들과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1판-4면-00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8-ㄴ-01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