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채(이병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09395
  • 전몰일자 : 19510516

공훈사항

이병채 하사는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 인평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1월 8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를 직접지원하고 있었다.
이병채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2월 중순, 제6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얼마 후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개시했다. 이에 제6사단은 전곡-백의리를 잇는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의정부를 거쳐 서울 창동으로 집결했다. 이후 사단은 1951년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2월 초에 미 제9군단의 방어배치 조정에 의해 문막 북쪽의 판대리로 이동하여 중공군의 추후 공세에 대비했다.
제6사단은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시에 판대리 방어진지를 사수함으로써 중공군의 돌파구 확장을 방지했다. 이병채 하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방어지역에 철조망과 지뢰지대 설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사단의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제6사단은 반격으로 전환하였고,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을 좌우로 잇는 선에 도달했다. 또한 사단은 철의 삼각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4월 21일에 공격하여 사창리까지 진출했으나,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사단의 후방이 차단되어 큰 피해를 받고 가평 방향으로 철수했다가 4월 27일에 용문산으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6사단은 중공군의 공세가 임박한 징후들이 곳곳에 나타나자 방어배치를 조정했다. 제2연대를 홍천강 남쪽에 추진 배치하고 주저항선인 용문산에 제7, 제19연대를 배치했다. 얼마 후 중공군은 5월 16일에 대규모 공세(일명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시작했고, 제6사단은 전초진지에서 제2연대가 주방어진지처럼 강력하게 저항했다. 중공군은 주방어진지라 생각하고 더욱 강하게 공격했다. 이 시기에 이병채 하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방어진지 전방에 철조망과 지뢰지대를 적극적으로 설치하고 거부장애물을 폭시시켜 적의 공격을 둔화시켰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채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3747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장병4묘역-410판-5097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ㄷ-05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