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채(李秉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08046
  • 전몰일자 : 19510927

공훈사항

이병채 일병은 충청북도 제천군 송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4월 12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22일 인제군 원통 일대까지 진출했다. 이때 중공군은 제5차 공세(4월 공세)를 시작했고, 제5연대는 4월 23일 제5사단에 배속되어 방어로 전환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제5연대와 제3사단 제22연대의 전투지경선을 집중 공격했다. 연대는 격전을 벌이면서 분전했지만, 측방이 노출되면서 전투력의 열세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부평리, 소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소양강 변의 부평리, 구만리에 배치된 연대는 중공군 제79·81사단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적을 저지했으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연대는 이 일대에서 더 이상의 돌파구를 허용하지 않고 적을 저지했다.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후 연대는 백석산을 확보하기 위해 그 남방의 917고지, 757고지 일대에서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갔다.
미 제8군은 전체 방어선 가운데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양구 일대의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미 제10군단에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8월 9일 백석산 남쪽의 554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적의 강력한 저항을 물리치고 9월 2일 목표를 확보한 후, 이어지는 적의 역습을 격퇴했다.
사단은 미 제2사단의 단장의 능선 탈취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9월 24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고, 연대는 백석산 동측의 894고지를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진격하다 적탄에 맞아 9월 27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5판-1면-16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3-ㄱ-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