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진(李炳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321341
  • 전몰일자 : 19500627

공훈사항

이병진 일등중사는 1930년 4월 16일 경기도 연백군 청룡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혼란하던 시기인 1948년 6월 29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하였으며,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진 일등중사는 연대 장병들과 함께 개성 일대의 방어력 증강을 위한 진지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북한군의 도발이 수시로 이어지면서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이 일등중사는 즉각 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T-34 전차를 앞세워 공격을 시작한 북한군은 그날 아침 개성을 점령하고 임진강 방향으로 공격을 확대하였다.
이 일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임진강 도하 작전에 참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으나 T-34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도하 한 후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부대 장병들은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고, 그 과정에서 연대가 구축하였던 38도선 방어진지는 6월 25일 오전 중에 무너져 버렸다.
이병진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소규모로 분산된 채 파평산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저항을 계속하였다. 이어 26일에는 파평산 방어진지의 노출된 동측방으로 접근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해 주저항선이 무너졌다. 이후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사단의 주공이 32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문산리를 위협하였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 일등중사와 장병들은 27일 야음을 이용하여 봉일천 북쪽 위전리-도내리를 연하는 최후저지선까지 결전을 펼치면서 철수하였다.
이 일등중사를 비롯한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으나 북한군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진 일등중사는 1950년 6월 27일 김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진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7판-8면-06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0-ㅎ-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