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진(李秉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1356
  • 전몰일자 : 19501013

공훈사항

이병진 일병은 부산시 서구 보수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8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흥해 남쪽 고지 일대에서 적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교전을 벌이면서 진지를 지켜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두호동-환호동 선에서 9월 4일까지 적과 뺏고 뺏기는 혈전을 거듭했다.
5일 새벽 적은 최후 공격을 감행했고, 연대는 3시간여에 걸쳐 완강히 저항했으나 결국 방어선이 붕괴되어 형산강 변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이때 적 제5사단도 쉽게 물러나지 않고 강력하게 저항했다. 연대는 해·공군의 폭격 지원하에 치열한 전투 끝에 사단 선두로 18일 도하작전에 성공했고, 여세를 몰아 9월 22일 흥해까지 진격했다.
국군은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연대는 일일 평균 17.3km의 경이적인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을 차례로 탈환하고, 30일에는 강릉을 탈환했다.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했다. 이후 연대는 원산 시내와 외곽 일대에서 저항하는 잔적소탕작전을 전개했다. 이 일병은 원산 외곽 잔적소탕 작전에서 앞장서다 10월 13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96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5-ㅈ-05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