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진(李炳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64549
  • 전몰일자 : 19530329

공훈사항

이병진 이등중사는 1932년 7월 29일 경상남도 해남군 마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분연히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초순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진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포항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격전 중인 상황이었다. 사단은 포항과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연대는 북진하여 30일 강릉을 탈환하고,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진격하여 10월 10일 원산 시가지를 점령했다. 이후 연대는 계속 진격했고 11월 11일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했다. 이 이등중사는 용감하게 앞장서서 진격하다 백암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이 이등중사는 긴 치료 끝에 회복되어 1952년 12월경 제1보충대로 전속되었다. 제1보충대는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편성되어 신병 보충 업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제주 4·3사건’(1948년 4월 3일 발생) 때 군·경의 토벌작전에서 살아남거나 한라산으로 도피한 공산주의자 잔당들이 중공군의 참전에 고무되어 수시로 출몰, 지서나 관공서 등을 습격·파괴했다. 그리고 때로는 우익 인사에 대해 테러를 하거나 민간인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때마다 제주도에 있는 해병대 병력이나 제1훈련소 기간 요원이 출동해서 이들을 소탕하곤 했다.
이병진 이등중사는 신병 보충업무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기동타격대로 편성되어 소탕작전에 앞장서 왔다. 그런데 1953년 3월 29일 모슬포 인근에 게릴라들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이 이등중사와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병진 이등중사는 앞장서서 게릴라들을 추격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진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5판-8면-13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8-ㅁ-05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