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직(李炳直)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603035
  • 전몰일자 : 19500710

공훈사항

이병직 이등중사는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3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하였으며,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병직 이등중사는 파평산 철수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0년 6월 26일 파평산 방어진지의 노출된 동측방으로 접근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해 주저항선이 무너졌다. 이후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사단의 주공이 32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문산리를 위협하였다. 이어 29일 북한군의 주력이 전방 주저항선을 돌파하고 문산-의정부 선까지 진출하자 이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봉일천과 창동 선에 급편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서울 방어를 위한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였다.
이병직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북한군 제3사단이 7월 4일 새벽 공격을 개시하여 금곡리 부근으로 밀어붙이고 풍덕천-수원 도로를 따라 남진하자 일제사격으로 이들을 한때 격퇴하기도 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해 방어선이 돌파되고 결국 7월 4일 평택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 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 제15사단은 연전연패가 계속되자 9일 다시 무극리-음성, 신양리-음성 양 측방 도로 접근로와 중앙 산간 접근로의 공격을 개시하였다. 새벽 무렵 북한군은 음성에 포격을 집중하면서 2개 연대병력을 각각 8대의 장갑차의 지원하에 연대 정면으로 공격하였으나 이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의 집중적인 저지사격과 역습에 의해 다시 저지되었다.
이 이등중사는 오직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사기로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병직 이등중사는 1950년 7월 10일 괴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직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7면-358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0-ㅈ-05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