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준(李炳俊)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55356
  • 전몰일자 : 19520813

공훈사항

이병준 하사는 1932년 1월 17일에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10월 20일, 동해안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제5사단에 입대하여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준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휴전회담장이 있는 개성이 포함된 서부전선에서는 충돌을 자제하였으나, 중・동부를 중심으로 한 전선에서는 ‘血戰’을 벌이고 있었다. 제5사단은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점령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951년 10월 20일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직할로 전환되어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에 임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3일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고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사단의 주저항선에는 좌측 전방에 제36연대, 우측 전방에 이병준 하사가 소속된 제35연대를 배치하고 제27연대를 예비로 수동리 일대에 집결했다. 351고지 전초진지 방어를 담당한 제35연대는 주저항선에 제2대대만을 배치하고 전초진지에 제1, 3대대를 배치하여 전초진지의 방어력을 강화했다.
마침내 북한군은 7월 10일 오후 10시에 대규모 공격준비사격을 개시한 후 대거 침공을 개시하여 351고지 전초진지의 일부가 돌파되고 말았다. 사단은 다음날 제35연대 제2대대 및 제3대대가 역습을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7월 12일에는 제27연대로서 동 고지를 탈환하도록 하였으나 진전이 없었으며, 다시 제35연대가 7월 13일 오후 8시에 역습을 전개하여 351고지를 탈환했다.
그 후 적은 11월까지 수시로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이 고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이병준 하사는 강원도 고성 일대 351고지를 탈환 후 8월 13일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소대 규모의 적과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준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ㄲ-08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