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준(李炳俊)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550240
  • 전몰일자 : 19510517

공훈사항

이병준 하사는 1933년 10월 8일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에서 출생하였다. 이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하사는 1950년 11월 20일에 입대 후 삼랑진에 있는 제6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로 배치되었다.
제9사단은 1950년 12월 19일부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방어했다. 연대는 현리-서림을 잇는 방어선에서 12월 말까지 북한군 제2군단 소속의 유격부대와 격전을 벌였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951년 1월 3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이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해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맞아 대략 1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37도선 일대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9사단은 강원 정선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후 제9사단은 3월 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가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이 두타산(1,361고지) 북쪽의 삼화리를 경유하여 북상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에 따라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3월 12일 송계리에 투입되었다. 연대는 북한군을 차단하기 위해 남쪽과 동남쪽에서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적들은 포위망이 압축되자 완강하게 저항했다. 적군은 밤이 되어 아군이 공격을 잠시 중지한 틈을 이용하여 18일 새벽에 포위망을 뚫고 북쪽의 목계리로 도주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적의 저항을 받으며 4월 중순 하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사단은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1951년 5월 7일 미주리(Missouri)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중공군은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하사는 속사리 부근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1951년 5월 17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준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8-ㅍ-02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