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준(李秉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6552
  • 전몰일자 : 19500920

공훈사항

이병준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 남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이병준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하순, 제6사단은 국통산과 324고지, 169고지 일대에서 중요지형의 쟁탈전이 연일 계속되고 있었다. 이후 8월 28일에는 역부족으로 지연전을 수행하며 신녕 방면으로 철수하여 370고지에 배치되었다.
북한군은 9월 2일 18시를 기해 국군방어지역에 대해 대규모 공격(일명 북한군의 9월 공세)을 개시했다. 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맞이하여 화산–725고지를 연하는 방어선에서 사력을 다해 격퇴했다. 북한군의 공격에 의해 일시적으로 영천, 경주, 포항이 점령되어 국군은 한때 큰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이에 국군은 9월 7일에 유엔군의 강력한 화력을 지원받아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했고, 이병준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가 직접 지원하는 제7연대는 신녕 북방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북한군은 큰 피해를 받고 9월 12일 이후부터는 공세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 부대와 보조를 맞추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낙동강의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제6사단도 지금까지 방어하던 정면의 적을 향해 반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강력히 저항했다. 사단은 9월 18일에 조림산 일대의 북한군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으나, 북한군도 방어태세를 강화하고 완강히 저항했다. 이어 20일까지 계속 공격했다. 그러자 적들은 9월 20일에 저항 없이 퇴각했다. 이병준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공격 시에 제7연대의 최선봉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신병이었지만 선두에서 용감하게 잘 싸웠고, 이날도 적 철조망 지대를 개척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9판-5면-01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ㅇ-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