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준(李炳俊)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86998
  • 전몰일자 : 19510609

공훈사항

이병준 이등중사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1년 2월 11일 입대하여, 대구에서 제주도 모슬포로 이전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준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많은 부대들이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철수하는 부대를 엄호하기 위하여 1950년 12월 5일경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하여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를 오르내리며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3월 3일부터 사단은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태기산 전투(3월), 인제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그러나 사단은 4월 24일 전선조정으로 인제를 적에게 넘겨주었지만 다음날 오전에 인제를 공격하여 재탈환했다. 그 후 사단은 5월 7일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공격하여 논리 북쪽의 인제군 매봉-상수내리를 잇는 선의 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5월 16일부터 공격(일명 5월 공세)을 시작했다. 중공군 제12군은 5월 16일 오후 5시 30분부터 춘천 내평리 일대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이 전투에서 사단은 부대가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포위망을 탈출, 재집결 후 새로운 진지를 점령하는 형태로 계속해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렀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이병준 이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5월 20일 홍천 부근 풍암리 일대에 新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그 후 사단은 5월 29일부터 군단 우측을 담당하면서, 현리 서북방 지역에서 캔자스선 진격을 위해 중공군 제2군단을 추격했다. 그러나 사단은 5월 31일 대규모 적에게 포위를 당하여 철수하면서 현리 서쪽 매봉재 일대를 점령하고 방어에 임했다. 이어서 사단은 6월 4일부터 6월 17일까지 14일간의 격전 끝에 원통 북방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연하는 新캔자스선을 점령에 성공했다. 이병준 이등중사는 복무기간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6월 9일 원통 일대 新캔자스선에서 소대원을 통제하며 예하부대와 통신망을 확인 중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준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8032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0묘역-2판-1667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3-ㄲ-01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