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주(李炳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7835
  • 전몰일자 : 19500928

공훈사항

이병주 일병은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9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일병 역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병주 일병은 팔공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편성에 주력하였다. 9월 4일 북한군 제3사단이 부대 간격을 따라 왜관-다부동 도로 남쪽 464고지로 침투하고 있었으며, 좌측방 왜관도 무인지경이 되고 우측방 에서는 북한군 제13사단이 다부동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가산으로 진출하려던 이병주 일병과 연대병력은 북한군 제1사단 1개 대대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철수하고 말았다. 가산(902m)은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 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여 전술적으로 중요하였으므로 쌍방은 가산을 탈환해야만 하였다. 이후 9월 10일 북한군 제1사단이 가산 일대에서 공격을 재개하여 일부 병력을 도덕산(660m) 일대로 남진시키고 일부 병력을 팔공산 일대로 진출시키고 있었다. 사단은 기병사단과 협조하여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며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가산 일대의 정해진 목표를 향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으며, 9월 25일부터 38선 진격전을 위한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는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신병에 불과했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투철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주 일병은 1950년 9월 28일 팔공산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0판-7면-02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ㅅ-00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