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주(李炳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8551
  • 전몰일자 : 19510115

공훈사항

이병주 일병은 경상북도 금릉군 감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을 추격하여 북진하자 조국통일의 선봉이 되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1월 15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청천강 일대에서 고전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덕천 남방에서 공격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11월 14일 사단은 덕천으로 진격했고,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사단은 26일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사단 지휘소가 습격당해 지휘통제 능력을 상실한 채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사단은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승호리-신계-시변리로 축차적으로 철수했다. 12월 6일 유엔군은 예성강 입구에서부터 시변리를 통과해 철원과 화천 그리고 양양을 거쳐 동해에 이르는 방어선을 설정하고 1차 지연전을 실시했다. 미 제8군은 12월 22일까지 점진적으로 전선부대를 남쪽으로 후퇴시키기로 했고, 이에 따라 사단은 시변리-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미 제8군은 김포반도-임진강-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주저항선으로 설정하고, 중서부전선은 미군에, 동부전선은 한국군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제7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 무렵 중공군과 북한군은 제3차 공세(신정 공세)를 위해 정찰대를 파견하여 아군진지에 대한 정찰과 더불어 수시로 습격을 가했다. 연대 장병들은 적의 습격을 막아내며 진지 공사에 전념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의 명에 의거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함에 따라 연대는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동북방의 봉래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연대는 그 선두부대와 조우하여 교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1월 15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1-ㅂ-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