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주(李炳柱)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05

공훈사항

이병주 순경은 1922년 10월 1일 평북 위원읍 안아군의 정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기도경 경무과 소속으로 재직 중 수원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북한 유격대가 태백산 일대에 계속 침입하자 치안국은 시흥 육군보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경찰 간부들을 중심으로 4월 20일 제8·제9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영월과 춘천지역에 배치하는 등 전·후방의 치안확보에 노력을 기울였다.
6월 10일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38도선 접경지역인 경기·강원 2개 도에 비상경비태세 강화명령을 내려 북한의 군사동태를 잘 살피도록 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이 순경은 경무담당으로서 경기지역 경찰서와 지서의 병력·무기현황을 파악하고, 전투 진행상황, 군부대와의 협조사항, 서울·강원·충북·충남경찰국과의 협조사항을 확인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경기도경은 북한군이 수원에 도달하기 전까지 정보수집, 철도경비, 오열 색출, 주요 보급로를 경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북한군의 선두 부대가 7월 4일 수원에 도달했다. 이 순경은 경기지역의 전투현황 파악과 정보를 수집하여 지속적으로 상부에 보고했다.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북한군에 의해 7월 4일 수원이 함락되면서 경기도경 병력도 수원에서 후방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7월 5일 오산을 향해 이동하던 경기도경이 송산동 일대에서 북한군과 조우하면서 쌍방 간 교전이 벌어졌다. 이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주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50판-5면-1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ㄱ-07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