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종(李炳鍾)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37961
  • 전몰일자 : 19530510

공훈사항

이병종 하사는 1932년 6월 6일 경상북도 경주군 강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2년 9월 6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 배속되어 강원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주저항선을 방어하며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사단의 주저항선 전방에는 ‘피의고지’와 ‘독수리고지’로 불리는 748고지와 572고지가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 고지들은 사단의 전초진지였다. 사단 정면의 적은 중공군 제68군 예하 제203사단이었다. 제203사단은 748고지 정면인 741고지-590고지 간에 제608연대를, 572고지 동쪽 어운리-662고지에 제609연대를 배치하고 전초진지에 대한 위력수색과 소규모 야간공격을 수시로 반복하고 있었다.
9월 28일 밤에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를 비롯한 주저항선 일대에 전례 없이 강력한 포격을 집중하며, 사단 주력을 투입하여 공격을 가해 왔다. 이에 사단은 전방 연대로 방어와 자체 역습을 가하면서 예비인 제18연대를 투입하여 10월 2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한 끝에 동 고지들을 지켜냈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 전선이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소규모 전초전이 반복되는 가운데,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정찰작전, 매복작전, 적진 탐색과 포로획득을 위한 전투정찰작전 등의 작전을 지속 수행했다.
1953년 4월 2일 중공군은 국군의 금성 돌출부에 대한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기 전에 서전으로, 사단 주저항선인 949고지, 973고지의 전초가 설치된 689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 장병들은 중공군 제181사단의 공격을 맞아 12일까지 8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중상을 입고 제23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5월 1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종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51묘역-3판-2787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8-ㅇ-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