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조(李炳祚)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22904
  • 전몰일자 : 19510118

공훈사항

이병조 일병은 1928년 5월 25일 경상북도 영일군 구룡포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 발발 이후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후퇴하자, 그는 조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 중순 제7사단에 입대하여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제2군단에 배속되어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진지를 구축하며 방어 준비 중인 상황이었다.
미 제8군은 김포반도-임진강-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주저항선으로 설정하고, 중서부전선은 미군에, 동부전선은 한국군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12월 25일 제3차 공세 시기를 12월 31일로 확정한 중·조연합사령부는 12월 30일까지 공격부대를 배치 완료했다. 중공군 제3차 공세가 시작될 무렵, 가평 동쪽의 중동부전선은 국군이 전담해서 방어했다. 이때 제2군단 예하의 제3, 7사단은 춘천 동북쪽과 인제 남쪽 관대리 일대에 방어 진지를 편성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다. 공격 첫날 제2군단은 북한군 제2군단 예하의 4개 사단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방어진지 일부가 무너져 적에게 포위될 위기에 직면했다. 제5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적의 강력한 공격에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 계획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한편, 중공군 제3차 공세 이전인 12월 하순부터 북한군 제2전선부대가 국군의 주저항선 후방인 홍천과 현리 일대로 침투하여 거점 확보를 시도했다. 이와 함께 북한군 제2군단 병력이 아군 부대 간격을 뚫고 기동하여 4일 홍천을 점령하고 선두부대가 횡성 방면으로 진출했다. 적의 압박이 가중됨에 따라 연대는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의 석항리 일대에 배치되어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 병력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연대는 1월 14일 대야리로 이동하여 24일까지 치열한 교전 끝에 영월을 탈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히 싸우다 적탄에 맞아 1월 18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10묘역-5판-137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1-ㅎ-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