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조(이병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803367
  • 전몰일자 : 19500711

공훈사항

이병조 일병은 1928년 9월 4일에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비산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럽던 1949년 7월 6일에 서울 용산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조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동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옹진지구전투사령부로 예속되어 제2연대로부터 38도선 경계임무를 인수했다. 이후 북한군의 도발이 잠잠해지자, 국군은 1950년 3월 1일부로 옹진지구전투사령부를 해체하고, 좌측에서 방어하던 제18연대를 옹진반도에서 철수시켜 수도경비사령부 예하로 복귀시켰다. 이로써 옹진반도에는 제17연대만 남게 되었고, 연대는 64km의 옹진반도 정면을 2개 대대가 담당하도록 배치하고 1개 대대는 예비로서 옹진 부근에 집결시켰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포격에 이어 전면적인 침공을 했다. 옹진반도에는 북한군 제6사단 14연대와 제3경비여단을 투입했다. 이병조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 장병들은 병력 및 화력의 열세를 무릅쓰고 지연전으로 저항하다가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6월 26일 아침 부포항에서 해군 LST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대전으로 이동하여 육본 경비임무를 수행하다가 6월 30일 오산과 평택 사이의 갈곶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북한군 제105전차 및 제4보병사단은 7월 5일 오전 7시 반에 미 스미스특수임무부대의 죽미령 방어진지를 공격했다. 스미스부대는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세로 인해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철수했고, 그 동쪽을 방어했던 제17연대도 스미스 부대가 철수하는 것을 확인 후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7월 11일에 보은에서 상주로 이동하여 국군 제1사단의 지연전에 합류했다. 이날 이병조 일병은 소대원들을 인솔하여 후위 경계를 하며 부대의 후미에서 이동했는데, 이때 북한군 선견부대의 공격을 받고 전투가 전개되었다. 그는 이날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2판-8면-19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ㄷ-02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