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제(李秉濟)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2180
  • 전몰일자 : 19500928

공훈사항

이병제 일병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11월 초순,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다.
북한군이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이병제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 본대는 원주에서 기차로 6월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이후 연대는 춘천 방면의 제7연대와 홍천 방면의 제2연대를 증원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30일 오후에 홍천에서 원주로 철수했다. 그리고 7월 한 달 동안 충주-조령-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을 맞아 지연전을 실시하고,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양곡동간 능선 일대를 점령했고, 6일에 선돌주막 남쪽의 새로운 방어진지로 철수했다.
제6사단은 8월 13일 다시 군위, 의흥을 경유해 매봉산과 산운동 일대로 철수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15일부터 전차로 증강된 북한군 제1사단은 제19연대 방어정면에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이에 연대는 8월 21일 야간에 민부대와 진지교대를 통해 사단 예비가 되었으나, 27일에 북한군이 화산을 무혈점령하여 신녕 지역이 위험에 처하자 신속히 신녕 지역으로 투입되었다.
이병제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8월 28일에 조림산 탈환을 위해 공격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탈환하는 데 실패했다. 반면 북한군은 9월 1일 야간에 전차 2대를 앞세운 보전협동부대로 공격했으나, 연대는 9월 4일까지 계속된 전투로 격퇴했다. 이후 연대는 9월 5일에 영천 지역을 피탈 당한 제8사단을 증원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연대는 금호강 북쪽에서 영천역과 완산동 방향으로 공격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해 영천의 위기를 구하고, 9월 12일에 사단으로 복귀하여 반격준비를 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이병제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정면의 조림산을 공격했으나, 최초 4일간은 악천후와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돌파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북한군이 9월 21일에 퇴각하기 시작했고, 연대는 9월 22일부터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9월 25일에 함창을, 28일에 문경을 탈환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2판-4면-03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ㅍ-08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