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자(이병자)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601263
  • 전몰일자 : 19500811

공훈사항

이병자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6월 26일 육군에 입대하여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출생지 및 출생 일자 미상).
이병자 일병은 임진강 도하 저지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북한군의 문산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다. 북한군 제3사단은 7월 4일 새벽 같은 시간에 공격을 개시, 금곡리 부근으로 밀어붙이고 풍덕천-수원 도로를 따라 남진하였다. 이에 이 일병과 사단 병력은 한때 이들을 일제사격으로 격퇴하기도 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해 방어선이 돌파되고 결국 7월 4일 평택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 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 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 제15사단은 연전연패가 계속되자 9일 다시 무극리-음성, 신양리-음성 양 측방 도로 접근로와 중앙 산간 접근로의 3개 방향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새벽 무렵 북한군은 음성에 포격을 집중하면서 2개 연대병력을 각각 8대의 장갑차의 지원하에 연대 정면으로 공격하였으나 이 일병과 연대병력의 집중적인 저지 사격과 역습에 의해 다시 저지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무렵 북한군이 공격을 재개하여 돌파를 기도함으로써 연대는 점차 위험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후 연대는 10일 낮부터 철수를 단행하여 괴산 북쪽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점령하게 되었으며, 7월 17일에는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에 밀려 미원 남쪽으로 진지를 전환하였다.
함창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던 이 일병과 장병들은 8월 1일 밤 낙정리로 이동하여 왜관에서 낙정리까지 도상거리로 42km 정면을 담당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였으며 이후 11일부로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최후까지 용감히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이병자 일병은 1950년 8월 11일 다부동 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자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7판-1면-50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ㅋ-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