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일(李炳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7396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병일 일병은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3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은 강원도 인제군부터 양양군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서 38도선의 경계를 담당하고 있었고, 제21연대는 유격대 소탕작전 중에 있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제21연대는 강릉군 주문진에 주둔한 제10연대를 후위에서 지원하는 한편, 후방에 침투한 북한의 무장유격대를 토벌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21연대 장병들이 후방에서 무장유격대 토벌작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전방의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에 기습남침을 당했다. 전쟁초기 적군의 전력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v보트 4쌍, 경비선 1쌍, 발동선 20척, 범선 40척 등으로 아군에 비해 우세한 상태였다. 때문에 아군은 전방에 배치된 제10연대로 하여금 지연전을 실시하고 제21연대를 강릉군 방면으로 이동시켜 방어태세를 강화했다.
제21연대는 적군의 우세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동해안에 상륙한 북한군 육전대를 저지했다. 이후 제21연대는 제10연대와 합류하여 안인진리, 모전리, 언별리선에서 북한군과 격전을 전개했다. 격전 끝에 북한군의 일부 병력은 산두곡에서 패주한 후 언별리로 향했고 우익대는 제8사단을 견제하고자 모전리에 공격을 개시하여 왔으나 제21연대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방어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제21연대 장병들은 주문진 탈환을 위한 반격을 준비했으나 북한군의 한 발 빠른 공격으로 아군의 방어선이 돌파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제8사단은 강릉군 시가지에서의 방어전을 고려하였으나 민간인의 피해가 우려되어 대관령 방면으로 철수하여 방어전을 실시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분발했지만 전력의 열세를 극복할 수 없었다. 이 일병은 지극히 불리한 전세 속에서 적군에 맞서 싸웠고 1950년 6월 25일 적군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일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0판-5면-15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5-ㅍ-09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