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일(이병일)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5200560
  • 전몰일자 : 19500912

공훈사항

이병일 일병은 전라북도 김제군 용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 7월 29일 제3사단에 입대하여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은 1950년 3월까지 경북 일대에 침투한 북한 유격대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2연대는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6월 25일 오후 대구에서 서울로 이동했고, 27일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봉일천 지구의 제1사단을 증원했다. 연대(-)는 고양 일대에서 적 제1사단과 접전을 벌였으나, 서울이 함락됨에 따라 29일 행주나루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시흥으로 철수했다.
연대는 6월 30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제3사단에 편성되어 7월 1일 금곡리, 7월 4일 풍덕천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수원, 천안 일대로 분산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연대는 조치원-청주-보은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동해안 축선의 위협이 증가됨에 따라 연대는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57호(7.20. 발령)에 의거 제3사단으로 원대 복귀했고, 23일 대구로 이동하여 재편성을 했다. 7월 24일 영덕 남방의 강구에 도착한 연대는 26일 제3사단의 역습명령에 따라 강구 북방의 181고지와 207고지를 탈취하고, 곧이어 30일 영덕을 탈환했다. 이후 8월 7일까지 연대는 이 일대에서 피·아간에 뺏고 뺏기는 혈전을 계속했으나, 8월 8일 적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강구 남쪽으로 철수했다. 8월 11일 적 제12사단 일부가 포항을 점령하면서 제3사단의 후방이 차단되어 고립되자, 사단은 17일 장사동에서 해상철수를 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8월 21일 공격을 개시한 연대는 흥해 남쪽 고지 일대까지 진출 후, 23일 방어로 전환했다. 북한군 9월 공세 때 사단은 두호동-환호동 선과 형산강 변 일대에서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일병은 일련의 전투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9월 12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4판-2면-00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2-ㅋ-07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