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일(李炳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52161
  • 전몰일자 : 19501012

공훈사항

이병일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칠성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19연대를 직접지원하고 있었다.
이병일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초순, 제6사단은 신령 북방의 화산-725고지를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의 격렬한 공격을 격퇴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해 대규모 공세(일명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시작했다. 당시 북한군은 격렬한 공격으로 한때 영천, 경주, 포항을 점령했고,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큰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한편 인접의 국군 제8사단이 9월 6일에 영천을 최초로 적에게 빼앗기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병일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19연대 장병들과 함께 육본 명령에 의거 금호강 북쪽에서 영천역과 완산동 방향으로 협공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해 타격을 가함으로써 영천의 위기를 벗어나게 했다. 공병중대는 9월 12일에 제19연대를 따라 제6사단으로 복귀하여 반격을 준비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낙동강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은 조림산을 거점으로 9월 22일까지 완강히 저항하다가 이날 야간에 퇴각했다. 제6사단은 9월 23일부터 도망가는 북한군 제8사단을 추격하여 함창-문경-충주를 탈환하고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했다. 10월 5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 일대에서 38선을 돌파하여 10월 8일에는 화천에 도착하였고, 10월 11일까지 제7 및 제8사단과 협력하여 김화-철원-평강을 확보했다. 이병일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반격작전 간에 제19연대의 선두에서 장애물을 개척했다. 그는 10월 12일에 김화로 진출하는 도중에 적이 설치한 지뢰지대를 개척하던 중 적 부대로부터 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3판-4면-13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ㅅ-02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