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일(李炳一)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99969
  • 전몰일자 : 19530719

공훈사항

이병일 이등중사는 1925년 10월 24일 출생했다(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박 이등중사는 1952년 2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그는 동 훈련소 조교로 배치되어 신병교육에 전념하다 제51교육보충연대가 창설되면서 이 연대로 전속되었다.
한편, 한·미는 미군 재보충이 어려운 상황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의 규모를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4월 28일 3개의 경장비 교육보충연대(제37·38·39연대)가 창설되었고, 6월 13일 다시 같은 성격의 3개 연대(제50·51·52연대)가 창설되었다. 이 중 제50연대는 독립연대로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실전훈련을 쌓으면서 군단 예비 임무를 수행했다.
제12사단은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신편된 제53·55·56교육보충연대를 잠정 배속하여 창설되었다가, 12월 10일부로 이들 연대를 배속 해제하고, 중장비 연대로 개편 완료된 제37·51·52연대를 건제부대로 편성했다. 사단은 12월 18일 인제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을 끝내고, 12월 27일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30일 미 제45사단과 임무 교대하여 강원도 양구군 서화 계곡을 감제하는 812-854고지를 잇는 선의 전선을 인수했다.
진지교대 이후 연대 정면의 북한군 제1사단은 854고지에 대해 국부적인 공격을 가해왔고 연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이를 격퇴했다. 이후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854고지 일대의 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적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한편으로, 새로 투입된 중공군의 전투경험 축적과 아울러 방어선을 개선할 목적으로 하계 공세(1953. 5. 13.~7. 27.)를 감행했다. 이 공세의 일환으로 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3군단 예하 제45사단이 6월 1일부터 공격을 가해왔다. 연대는 6월 9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854고지를 지켜냈다.
7월 16일 적은 재차 공격을 가해왔고, 사단 장병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하면서 분전했으나, 결국 812고지 동측의 쌍룡고지를 빼앗긴 채 휴전을 맞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7월 19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일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5-ㄴ-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