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일(李炳日)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37644
  • 전몰일자 : 19530714

공훈사항

이병일 이등중사는 1928년 4월 9일에 충청북도 보령군 대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시작되었던 1951년 9월 2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일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하순, 제6사단은 봉화산-765고지-교암산에 방어 배치되어 있었다. 전선은 소강사태로 장병들은 진지보강과 수색 및 매복작전 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0일부로 양구 남쪽으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을 하다가 3월 22일부로 다시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를 인수하였다. 이곳에서 사단은 보병 3개 연대가 교대로 전방지역 근무를 실시토록 했다.
이 시기에 제7연대는 교암산 일대를 담당하였는데, 방어진지 전방에는 전초기지인 575고지가 있었다. 이 고지는 대치하고 있는 중공군에겐 눈엣가시였다. 중공군은 1952년 4월 16일 야간에 기습공격으로 575고지를 탈취하고자 했다. 이에 연대 장병들은 4월 18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혈투를 벌였으나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결국 고지로부터 밀려났다. 이후 제7연대는 5월 22일에 방어지역을 제19연대에 인계하고, 사단 예비로 전환했다.
이병일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 예비로 활동하다가 10월 21일부로 전투지경선이 확장되면서 전방 방어진지를 점령하게 되었다. 그가 점령한 지역은 사단의 우측 방어지역으로서 교암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이었다. 이후 사단은 예하 3개 연대가 교대로 전방연대와 사단 예비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사단 지역에는 1953년에도 전투 없이 전선의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병일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4월 1일부로 사단 좌측 방어부대가 되면서 봉화산 지역을 담당했다. 그러던 중 중공군 2개 사단이 7월 10일에 방어지역을 기습 공격했다. 중공군은 휴전협상이 타결될 기미가 보이자, 타결되기 전에 그동안 빼앗겼던 금성천 분지를 포함한 돌출부를 되찾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공격했다. 이에 사단은 7월 14일까지 방어전투를 수행했으나 중과부적으로 교암산을 적에게 내어주고 주파령-적근산을 잇는 선으로 철수했다. 이날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전투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일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3611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6-ㅁ-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