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인(이병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21901
  • 전몰일자 : 19510520

공훈사항

이병인 일병은 출생일자와 출생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병은 1950년 11월 27일에 입대 후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할 당시, 제9사단은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경북 김천지구 및 왜관지구에 투입되어 공비들을 소탕한 후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1951년 1월 3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이다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사단은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어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하였다.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월 12일부터 18일까지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적의 저항을 받으며 4월 중순에 하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사단은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1951년 5월 7일에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 결과로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하여 인제 남방의 598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이 무렵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 징후가 포착되어 사단은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
중공군은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적탄에 맞아 후송되었으나 1951년 5월 20일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인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ㄹ-01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