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인(李秉仁)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50950
  • 전몰일자 : 19501218

공훈사항

이병인 이병은 경상남도 울산군 화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말,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인 이병이 전입했던 9월 중순, 제6사단은 신령 북방에서 반격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단은 9월 16일 반격작전을 개시했고, 21일부터 추격작전을 실시하여 보은-괴산을 거쳐 30일에 북한군의 경미한 저항을 소탕하며 원주에 진입했다. 이후 10월 5일에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하여 화천-김화-신고산-덕원(원산 북쪽)-마식령-양덕을 거쳐 10월 19일에 성천-순천을 점령했다.
이병인 이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10월 22일 아침에 순천을 출발, 강력하게 저항하는 적을 제압하고 희천을 점령했다. 제2연대 장병들은 23일에 희천-벽동 방향으로 진격해 갔다. 이때 중공군은 압록강을 은밀히 도하하여 적유령 산맥 일대에 은거해 있다가 10월 25일부터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국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사단 장병들은 공중보급을 받으며 10월 27일부터 함경북도의 첩첩산중에서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으면서 철수하여 10월 30일에 청천강을 건너 개천으로 집결했다.
제6사단은 11월 14일에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군단은 11월 25일에 유엔군의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시작했다. 공격 2일차인 26일에 전방에서 공격하던 제7사단이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위기에 처했다. 당시 군단의 예비였던 제6사단이 투입되었으나 실패하고, 사단 전 병력은 상급부대 명에 의거 12월 1일부터 북창을 거쳐 시변리-고랑포 지역으로 철수했다. 이후 12월 11일에 동두천-전곡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진지공사와 부대정비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이병인 이병이 소속된 소대는 12월 18일에 작전지역 내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인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2-ㅋ-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