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익(李炳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02872
  • 전몰일자 : 19511231

공훈사항

이병익 일병은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3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익 일병은 임진강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당시 양측은 서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를 자제하였지만 신경전과 소규모전투는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이병익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951년 4월 고양 임진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였다. 중공군은 또 한 차례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4월 22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파평산에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그를 비롯한 장병들의 투철한 전투의지에 따라 중공군은 서울점령을 포기하고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전환하였다.
이후 5월 16일 중공군이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지만 서부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사단은 임진강 일대에서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다. 이어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선 상의 영평을 확보하기 위해 문산 축선에 투입되었다.
이병익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고봉산 부근에서 경미하게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퇴하고 일산을 경유 금촌으로 진출하였다. 이후 10월 3일 이른 아침 1시간에 걸친 공격 준비사격에 이어 오전 6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임진강상의 주진지를 확보한 가운데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사미천 서안의 91고지와 146고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12월 28부터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에 투입되어 중공군 제63군 예하 제188사단과 대치중이었다. 그가 전투를 수행하는 전초진지에서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익 일병은 1951년 12월 31일 장단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ㄱ-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